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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라틴어를 비롯한 다른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고전 언어 (헬라어나 산스크리트어 등)의 문법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상당히 있다. 일단 명사에는 성, 수, 격이 있는데 이들 언어는 굴절어이므로 명사의 어미를 바꾸어 이러한 문법적 요소들을 나타낸다. 비록 고대 영어는 상당히 복잡한 굴절어였지만 현대 영어는 굴절성이 상당히 약해진 언어이다. 명사에 대해서는 복수형에 -s라는 어미를 붙이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동사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룬다.) 또한 성이라는 개념이 거의 상실되어 있다. 하지만 라틴어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해서 모두 어미가 달라진다.
첫 번째로 성(genus)에 대해서 설명해본다.
일단 puella(소녀)는 여성명사이고 puer(소년)은 남성 명사이다. 이건 이해가 간다. Rosa(장미)는 여성명사이다. 이건 조금 그렇다. Vita(삶, 인생)도 여성명사이다. 이건 확실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라틴어 명사는 남성(masculinum, m.), 여성(femininum, f.), 중성(neutrum, n.)으로 나눌 수 있다. 사실 pater(아버지)[m.]와 mater(어머니)[n.]처럼 자연적인 성을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명사는 외워야 한다. 또한 성은 의미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론을 내리자면 그냥 외워야 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로망스어라고 해서 라틴어와 성이 같지 않다. 프랑스어의 véhicule와 스페인어의 vehículo는 둘 다 차(혹은 마차)를 뜻하는 단어이다. 그리고 둘다 어원은 운송 수단을 뜻하는 라틴어 vehiculum을 어원으로 한다. 그런데 vehiculum은 중성 명사이고 véhicule와 vehículo는 남성 명사이다. 사실 중성 명사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는 뜻이고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는 명사를 남성과 여성으로만 구분한다. 고대 영어의 경우에는 남성·여성·중성의 3개 분류를 따랐지만 11세기 이후에 프랑스어의 유입으로 혼란이 일어나다가 결국 성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수(numerus)에 대해서 설명해본다.
라틴어는 단수(singularis, sg.)와 복수(pluralis, pl.) 두 가지에 따라 명사의 어미가 바뀐다. 예를 들어 puella(소녀)는 단수 형태이고 puellae(소녀들)은 복수 형태이다.
세 번째로 격(casus)에 대해서 설명해본다.
한국어는 교착어로 조사를 단어 끝에 붙여서 격을 나타낸다. 라틴어의 경우 어미가 바뀐다. 예를 들어 puella는 문장 안에서 주어에 해당되는 주격을 나타내고 puellam은 문장 안에서 목적어에 해당되는 대격을 나타낸다. 본래 인구어에는 여덟 가지의 격이 있었으나 라틴어는 그중에서 2개가 (그 흔적은 남아있으나) 소실되어 여섯 가지만 남아있다. 그 여섯가지 격은 다음과 같다. (나중에 구문론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된다면 좀 더 자세히 쓸 예정이다.)
1. 주격 | nominativus | nom. |
2. 속격 | genitivus | gen. |
3. 여격 | dativus | dat. |
4. 대격 | accusativus | acc. |
5. 탈격 | ablativus | abl. |
0. 호격 | vocativus | voc. |
주격(nom.)은 동사의 주체를 지시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격으로 보통 주어로 사용된다.
E.g. Horatia in casa laborat. = Horatia는 집에서 일한다. [Oxford Latin Course]
속격(gen.)은 다른 명사를 수식하거나 한정하는 역할을 하는 명사의 격이다.
E.g. Agnus Dei = 어린양 하느님의 = 하느님의 어린양 [대영광송]
여격(dat.)은 문장 안에서 수여 동사가 사용될 때 "~에게"라고 해석되는 간접 목적어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여격은 동사가 표현하는 동작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E.g. Puer puellae rosam dat. = 소년이 소녀에게 장미를 준다. [Wikiversity]
대격(acc.)은 문장 안에서 직접 목적어 역할을 한다. 즉 동사가 표현하는 동작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킨다. 또한 전치사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E.g. sed libera nos a malo. = 하지만 자유롭게 하라 우리를 ~로부터 나쁜 것 = 하지만 우리를 악한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소서. [주님의 기도]
탈격(abl.)은 동사의 간접 목적어나 동사의 부사적인 관계를 표시하며 수단, 행위자, 동반, 방법, 장소, 시간 등을 나타낸다. 또한 전치사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용법이 가장 더럽고 직관적이지 못하다. 본디 이름과 같이 ab+latus 즉 분리 또는 멀어짐을 나타냈다. 그러나 처격과 도구격이 탈격에 합류하며 여러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명사를 부사처럼 사용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E.g. Roma discesserunt. = (그들은) 로마를 떠났다. (장소에서 멀어짐)
E.g. Oculis video. = (나는) 눈으로 본다. (방법)
E.g. Prima luce domo discesserunt. = 새벽에 (그들은) 집을 떠났다. (시간)
E.g. Filia est in case. = 딸이 있다 ~에 집 = 딸이 집에 있다. (전치사와 함께)
호격(voc.)은 호칭할 때 사용하는 격이다.
E.g. Domine, quo vadis? =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교회 전승]
여섯 가지 격만 외우면 될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게 쉽지 않다. 라틴어 명사는 변화하는 형태에 따라서 다섯 가지로 분류한다. 그리고 각 유형마다 단어의 어미 형태도 다르고 어미변화도 다르다. 불규칙도 당연히 있다. ㅋㅋㅋ
라틴어에는 관사가 없다. 관사랑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위해 일단 영어의 부정관사 a/an에 대해 알아보자. 영어의 부정관사는 정해지지 않은 무언가라는 뜻도 있지만 본디 1을 나타내는 수사였다. (사실 부정의 무언가라는 뜻은 고대 영어부터 존재하던 뜻이었다. 아마 순수하게 수사로 사용되던 때는 훨씬 오래전이었을 것이다.) 즉 영어 화자들은 부정관사를 붙여서 명사가 단수임을 나타낸다. 다른 언어는 어떠한지 생각해보자. 독일어 관사는 성과 격을 나타낸다. 프랑스어 관사는 성을 나타낸다. 스페인어 관사는 성과 수를 나타낸다. 이탈리아어 관사는 수와 성을 나타낸다. 이런 식으로 관사를 이용하여 명사의 속성들을 분리시킬 수 있다. 라틴어가 로망스어로 파생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기원후 1세기부터 지중해 연안 주민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대중 라틴어(latinitas vulgate)에서도 이미 라틴어 어미변화가 단순해졌고 비교적 느슨했던 어순이 점차 고착화되어 현대 영어와 같은 고립어처럼 엄격한 어순에 격의 의미를 담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같은 역할을 하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면 하나는 사라지게 되는 법이다. 관사와 굴절 중에서 더 불편했던 굴절이 사라졌다. 이를 통해서 고대인들한테도 라틴어는 엄청 어려운 언어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 점에 위안을 받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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